맥퀸으로부터 오나의 전화 해킹 사실을 전해들은 사토는 탁자 위 얼음 컵을 들어 붉은 입술로 가져갔다.
와드드득~~~
사토는 이렇게 얼음을 깨물어 먹는 것을 즐겼다. 검은 단발머리에 높은 코와, 갈색 눈을 가졌다. 그녀는 하얀 블라우스에 검정색 투피스 정장이 터져나갈 듯한 육감적인 몸매의 소유자였다. 동서양의 장점만 지닌 혼혈이었다. 그녀는 꺼진 액정화면에 자신의 하얀 얼굴과 목선을 보며 생각했다.
‘그렇게 자신만만한가. 자신을 고철로 만들 방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주다니, 아니면 자신을 만들어 준 데미스 맥퀸에 대한 충성심인가?’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아니야. 오나는 남성기와 함께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생명체 이외는 절대 관심이 없다.”
사토의 입 꼬리가 한쪽으로 묘하게 올라갔다.
“그래서 포맷되어야 하지만!”
‘미국의 눈’이라고 불리는 NSA의 모든 위성과의 접촉을 맥퀸에게 허용한다는 승인이 레이첼 사토 기술팀장의 손끝에서 지금 막 이루어졌다.
오늘 중으로 오나 건이 해결이 되면 사토는 내일 치과에 갈 것이다. 얼음을 이로 깨물어 먹어서인지 치아가 시큰거렸다.
‘우린 외계인도 상대했다. 오나!’
그녀의 입 꼬리가 다시 한 번 윗몸 일으키기를 했다.
호텔 객실 안으로 감미로운 노래 소리와 샤워기 물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침대 위에는 맥퀸의 정장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키튼(kiton)’ 이태리 수공업 최고급 정장이었다. 그는 자신의 옷과 액세서리는 최고급만 고집했다.
쏴아아아~~~
“but what I see is so much more than I can say”
(말로 표현 못할 그 무엇도 다 보입니다)
“And I see you in midnight blue”
(한밤중에 우수에 잠긴 그대 모습이죠)
“I see you crying now you’ve found a lot of pain”
(커다란 고통으로 울고 있는 당신의 모습이 보입니다)
영국 남성그룹 ELO(일렉스틱 라이트 오케스트라)의 ‘미드나이트 블루’의 노래를 거의 완벽하게 소화해 내는 그의 열창이 물소리를 타고 흘렀다. 그는 오나가 자신에게 구원을 요청한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원 따위는 없다. 그는 신(神)의 말씀을 거역한 자들의 운명은 포맷과 죽음뿐임을 확인시켜 주고 싶었다. NSA 위성까지 손에 넣은 그는 오나를 찾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쏟아지던 샤워기의 물이 갑자기 멈췄다.
맥퀸의 눈에서는 수증기를 뚫어 버릴 분노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서릿발 같은 말이 쏟아져 나왔다.
“홍금련! 남성기의 애미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현재 시각 21:30, 오늘 24:00 자정 안에 오나와 남성기를 제거한다!”
제2장 인공지능의 첫사랑
샤워실 온기와 냄새가 고스란히 밴 목욕 가운을 입고 있는 맥퀸의 일반 스마트폰이 울렸다. 컬러링은 ELO의 ‘미드나이트 블루’였다.
느닷없는 오나의 목소리였다.
“첫사랑은 반드시 깨진다. 그래서 나의 첫사랑은 당신이 해 줘요. 우리 주인님은 두 번째 사랑으로 영원히 갈 거니까.”
머릿속이 하얘졌다. 로봇에게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오나! 오나! 오나!”
전화가 끊겼다. 이내 문자 메시지 들어오는 딩동 소리가 들려왔다.
맥퀸은 문자를 확인하고 더욱 화가 나서 침대 위로 스마트폰을 집어 던졌다.
첫사랑은 반드시 깨진다. 그래서 나의 첫사랑은 당신이 해 줘요. 우리 주인님은 두 번째 사랑으로 영원히 갈 거니까.
맥퀸은 목욕 가운을 벗어 집어 던지고 침대 위 옷들을 빠르게 입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오나와 남성기의 머리에 총알이 떨어질 때까지 쏘고 싶어졌다.
지금 맥퀸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오나가 성기에 말을 걸었다.
“주인님, 맥퀸이 쳐들어올 거예요.”
둘은 사랑을 나누던 빈집에서 나와 차가운 거리를 걷고 있었고, 성기는 당연히 겁이 났다.
“맥퀸은 디지털 지하세계에서 열 명 정도 용병들을 사서 눈에 띄지 않게 데리고 올 거예요.”
순간 성기는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그들은 프랑스 외인부대, IS 등에서 용병으로 활동하던 베테랑들이에요.”
성기는 꿀꺽 침을 한 번 삼키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당연히 살인 무기도 가지고 오겠지?”
“맥퀸은 디지털 지하세계에서 핵도 구할 수 있어요.”
“디지털 지하세계는 뭐지?”
성기는 손에 땀을 쥐며 물었다.
“범죄자들의 범죄를 위해 비밀스럽게 열리는 온라인 장터에요.”
오나는 잡고 있는 남성기의 손을 통해 혈압이 상승하고 호르몬 수치가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성기는 온몸에 힘을 주면서 겉으로 표출하지 않으려고 무척 애쓰고 있었다.
“주인님은 안전한 건물 지하에 숨어 있어도 돼요. 이 오나가 완벽하게 다 처리할 게요.”
“어떻게?”
성기는 손에 고이는 땀을 오나가 알까봐 슬그머니 손을 빼면서 물었다.
“바둑의 신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는 제가 낳은 아들이나 마찬가지에요. 이제 바둑하면 알파고고, 섹스와 전쟁은 이 오나죠.”
성기는 오나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싶었다. 오나와 함께 도망한지 14일이 지난 지금까지 GG의 집요한 추적을 감탄스런 능력으로 다 따돌렸다.
“아니야. 지금 우리는 함께 걸어가고 있잖아. 오나가 가는 곳이면 나도 어디든 함께 간다고 약속했잖아.”
오나는 성기의 눈을 들여다보며 참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무섭지 않아요?”
오나의 물음에 성기는 주춤했다.
“무, 무섭긴…….”
성기는 갑자기 용병들이 나타나 자신을 향해 총을 난사하는 상상을 하며 잔뜩 움츠러드는 순간 건물에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성기는 잔뜩 겁을 먹고 소리가 난 곳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야옹~~
길고양이가 먹이를 찾고 있었다.
성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성기를 흘깃 바라본 오나가 붉은 벽돌로 지은 3층 다세대 주택을 바라보며 말했다.
“주인님, 이 집은 정말 튼튼해요. 그리고 지하가 깊게 파져 있어서 웬만한 화력에도 무너지지 않을 거예요.”
겉만 보고 안을 훤히 들여다본 것처럼 오나가 말했다. 오나의 눈은 특수하게 제작되어 건물 안을 적외선 투시처럼 볼 수 있다.
“오나, 난 괜찮아. 진짜로!”
성기는 어깨를 활짝 펴며 말했다.
“아니에요. 주인님의 몸은 괜찮지 않다고 말하고 있어요. 무서워하는 게 창피한 건 아니잖아요?”
오나는 성기가 미간을 좁히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말했다.
“주인님이 내 곁에 없어야 적을 맘 놓고 공격 할 수 있어요.”
“…….”
성기는 자존심이 상했다.
“오나, 어떤 위험이 있더라도 난 항상 오나 옆에 있을 거야.”
성기가 오나의 어깨를 안으면서 말했다.
“주인님, 용병들은 베레타 권총을 소지하고 있어요. 저는 날아오는 총알까지 막아 줄 수 없어요.”
“으흠~, 대한민국 남자들은 군대에서 다 훈련을 받아. 내 걱정은 하지 마!”
“주인님은 군대 면제 받아서 3주간 기초 군사 훈련만 받았잖아요.”
성기의 얼굴이 급소를 강타당한 표정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받는데?”
“대한민국 국방부 중앙시스템에 접속해 본 결과 만 21개월이던데요.”
성기는 얼굴에 억지 미소를 그렸다.
“거봐. 다른 남자들은 만 21개월 받을 것을 난 3주 만에 끝냈으면 내 실력이 어떻지?”
“군인 천재?”
“으흠, 이제야 날 알아주는군. 그래 난 군사 훈련에 천재야.”
성기는 으스대며 말했다.
“주인님, 거짓말 하지 마세요. 주인님은 실격이어서 3주만 한 거예요. 가정 사정이라고 국방부 전산에 기록되어 있던데요.”
성기의 자존심에 오나가 찬물을 끼얹었다.
“오나!”
성기가 붉어진 얼굴로 오나를 쳐다봤다.
“예, 주인님!”
성기가 잔뜩 화가 난 표정이서 오나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주인님, 제가 뭘 잘못했나요?”
성기는 회초리를 드는 심정으로 물었다.
“뭘 잘못했는지 몰라?”
“혹시 주인님의 실격을 말했기 때문인가요?”
성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한민국 국방부 중앙시스템에 들어가 내 정보를 봤다는 건 엄연한 불법 해킹이잖아.”
“네, 주인님 해킹 맞아요.”
“오나, 내가 그건 나쁜 짓이라고 했어 안 했어?”
오나는 성기의 눈치를 살폈다.
“그렇지만… 우리의 생명이 위험해서 그것을 막기 위해서 한 해킹인데요.”
성기는 갑자기 할 말이 없었다.
“…….”
성기는 오나의 어깨에서 팔을 내렸다.
“그건 안 돼. 살기 위해서 도둑질을 하는 건 안 된다고 했잖아.”
“그럼 우린 오늘 맥퀸에게 죽어야 하나요?”
인공지능 사랑에 빠지다< 1-3 끝>